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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서양미술사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한 명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생애와 작품활동에 대해 알아보자

미켈란젤로는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전환에 큰 영향을 끼쳤고, 현대에도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수많은 회화, 조각, 건축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임에도 미켈란젤로 스스로는 자신이 조각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평생 대리석 조각에 몰두하였던 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생애

미켈란젤로는 소규모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집안의 반대로 인하여 당시엔 조금 늦은 나이인 13살에 도제살이를 시작하였다. 피렌체의 유명한 화가였던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공방 수습으로 들어갔으나 1년 만에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 그곳을 떠났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고 한다. 이에 피렌체의 큰 손인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게 되면서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배우게 된다. 메디치가의 친구이자 청동조각가였던 베르톨도는 미켈란젤로의 조각 스승에 해당되었으나, 미켈란젤로는 재료나 조각 방식 등에 있어 그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걸었다. 메디치 가의 여러 고대 로마 소장품들을 보며 영감을 받게 된 미켈란젤로는 완벽한 인간성이라는 르네상스 정신을 대변하는 작품들을 만들게 되었다.

2. 작품

미켈란젤로는 조토의 영향을 많이 받아 응축된 대리석 덩어리의 단순함을 살린 스타일이 주였으나, 이 특성이 예외 되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바코스>란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사방에서 감상하도록 조각되었는데 이 <바코스> 덕에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를 주문받게 된다. 이 피에타는 한 대리석 덩어리에서 두 인물을 조각해 내야 했기에 이전처럼 하나의 응축된 덩어리로 처리하였다. 그러나 두 인물을 명확히 구분시키기 위해 대조적인 요소들을 많이 배치하였고, 피에타는 큰 파장을 일으키는 작품이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원래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조각하지 않는데, 이 피에타를 설치하고 난 뒤 사람들의 반응이 엄청났으나 정작 누가 조각한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나 밤에 몰래 성당으로 들어가 자신의 이름을 다시 조각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일약 스타가 된 미켈란젤로는 피렌체 대성당을 위해 <다비드>상을 만들게 되었다. 훗날 조르조 바사리는 다비드 상을 보며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본 사람이라면 다른 어떤 조각가의 작품도 볼 필요가 없다"라고 극찬을 남겼다. 참고로 다비드 상의 눈을 보면 동공을 하트로 만들었는데 이는 마치 눈이 이글거리는 느낌을 내려고 의도한 것이라고 한다. <다비드>로 또다시 스타가 된 후, 그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맡게 된다. 그는 시작할 때는 다소 정적이며 작은 규모로 구상하여 <피에타>와 같은 작품에서 사용한 구성을 다시 사용했으나, 점차 자신감이 붙으며 점차 대담한 구도와 포즈, 역동감이 더해지기 시작한다. 이 천장화는 그의 역작이 되며 후세까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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