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성, 강한 색감, 그리고 관능미까지 표현한 환상적인 스타일의 대표 작가 루벤스
루벤스는 초상화, 풍경화, 역사화 등으로 유명하며, 여러 귀족과 미술품 수집가에게 유명했던 안트베르펜의 화실도 운영했으며, 기사 칭호까지 부여받은 외교관이었다. 그는 예술적 재능뿐만 아니라 사람을 잘 다루는 재주도 있었기 때문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 초상화가이자 종교화가로도 활동했다. 이러한 다재다능한 그의 재능으로 당대 플랑드르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가지게 되었으며 추후 로코코 양식과 낭만주의까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루벤스의 생애와 대표 작품에 대해 알아보자.
1. 생애
10살 때 루벤스는 형과 함께 라틴어 학교에 들어가고, 이 학교에서 루벤스 나이 또래인 발타사르 모레투스와 친구가 된다. 이 친구는 후에 플랑드르의 주요 출판사의 사장이 된다. 루벤스는 1590년 집안 사정으로 인하여 교육을 중단하게 되고 알랭 백작 부인의 심부름꾼으로 보내게 되었다. 그는 그 일에 싫증을 느끼고 화가가 되겠다는 허락을 받고 안트웨르펜의 화가이자 친척인 토비아스 베르하크트에게 보내지며 그 밑에서 그림의 기초를 배우게 된다. 그 후 아담 반 노르트 밑에서 4년가 도제 생활 후 오토 반 벤의 도제가 되었다. 반 벤은 로마파 화가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화가에 속했다. 루벤스는 2년간 안트베르펜의 성 루가 길드에 속해 일한 뒤 1600년 이탈리아로 떠나게 된다. 그는 로마에서 당대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하며 공식적인 첫 주문도 받게 된다. 1603년 그는 최초의 외교 임무도 받게 되는데 레르마 공작에게 줄 여러 점의 복제화를 수리하던 중 복구가 불가능한 작품들이 있어 자신만의 독창적인 그림을 그려 망가진 그림 대신 레르마 공작에게 주게 되며 훗날 외교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1621~30년 동안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자들은 루벤스를 외교관으로 삼았고, 그는 많은 외교 활동을 하며 평화 조약을 위해 힘써왔으나 결국 평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유럽은 30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다. 말년엔 어린 소녀와 재혼하며 조용히 작품 활동을 하다가 1640년 쭉 가지고 있던 지병인 통풍이 심장에까지 미치며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2. 작품
서양 화가들 가운데 루벤스는 가장 여러 기법들을 잘 소화해 내며, 다양하고 많은 작품을 작업한 화가에 속한다. 그는 로마와 베네치아, 고대, 16세기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며 그들의 그림들을 연구하였다. 루벤스는 바로크 운동의 대가로 간주되며, 극적인 색상, 역동적인 움직임과 감정들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들로 인해 그는 대규모 서사적 구성이 필요한 작품들을 만드는데 탁월한 화가였다. 그는 종교, 신화, 역사적 주제를 가리지 않고 포괄하는 광범위한 작품들을 제작했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십자가에서 내리심>, <십자가의 높이> 등이 있다. 또 그는 초상화가로써도 능력이 출중했는데 그의 초상화는 피사체의 개성을 잘 담아내면서 고급스럽게 표현해 내었다. 대표적인 초상 작품으로는 <헬레나 푸르망의 초상>과 <묵주를 들고 있는 젊은 여성의 초상>이 있다. 이러한 그의 작품들은 후대의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유럽 회화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