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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서양미술사

장 앙투안 와토

'페트 갈랑트'라는 새로운 장르의 창시자이자 로코코 양식의 대가 장 앙투안 와토

당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로코코 양식의 대가 중 한 명인 장 앙투안 와토는 <페트 갈랑트>라고 불리는 장르를 이끌기도 하였다. <페트 갈랑트>는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에서 지어진 말로 야외에서 우아하게 차려입은 남녀들이 사랑을 속삭이거나 세레나데를 부르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묘사하는 그림이다. 와토는 주로 이러한 그림을 그렸기에 왕립 아카데미에서 그를 화원으로 받아들인 후 이런 장르를 분류할 명칭이 필요했기에 생겨난 이름이다. 이러한 와투의 생애와 작품 특징에 대해 알아보자.

1. 생애

와투는 1684년 프랑스 발랑시엔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미술에 재능을 보여 1702년 파리로 넘어가 다양한 화가와 장식가의 조수로 일하며 미술가로서 수련을 쌓았다. 그는 무대 미술가였던 클로드 질로의 공방에서 수련하며 공방의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익살스러운 연극 주제의 그림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고 와토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 후 뤽상부르 궁전에 있는 메디치 미술관의 관장인 클로드 오드랑 3세의 작업실에 들어가게 되며 뤽상부르의 수많은 미술품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그는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그림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와토의 명성은 점점 높아졌으나 수줍은 성격과 사람을 싫어했기에 그에 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그는 결핵으로 인하여 계속 나빠지던 자신의 건강 때문에 치료를 위해 영국으로 떠났으나, 추운 날씨에 오히려 병세가 악화되어 37세라는 이른 나이에 영원히 잠들게 되었다.

2. 작품

와토가 활동한 시기는 여러 예술 장르들이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전시대의 고전주의에 반발을 일으키며 예전에 열등한 취급을 받았던 장르들을 발전시키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시도에서 다양한 분야가 융합되어 오페라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였으며 여러 예술 분야 사이의 벽이 허물어졌다. 와토의 그림은 이러한 오페라를 색채로 치환한 느낌을 보여준다. 와토의 작품은 매우 미묘하고 일시적인 형식들을 통해 그의 시대를 해석하였고, 고대의 위대한 영웅보다는 세련된 현대의 유행에 찬사를 보내었다. 모든 형태의 사실주의를 거부하였고, 와토의 주제들은 보통 덧없는 것에 관심을 가졌고, 표현하는 방식도 여성적이었다. 그가 그린 나무들조차 줄기가 가늘며 윤곽이 부드럽고 잎사귀들 또한 흐릿하게 무성하다. 또한 그가 그린 그림들은 덧없는 즐거움과 함께 어딘가 음울한 기운을 띄기도 하는데 이러한 멜랑콜리적인 그림의 분위기는 그의 건강이 나빴던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자유로운 그림 세계를 강조한 와토는 그가 사망한 뒤 작품의 주제가 인위적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그의 평판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1856년이 되어서 공쿠르 형제가 <와토의 철학>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다시금 명성이 올라가며 대중들에게까지 폭넓게 확산되었다.

장 앙투안 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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