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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서양미술사

잔앙투아네트 푸아송 드 퐁파두르

로코코 문화의 주요 후원자이자 꽃을 피우게 한 마담 퐁파두르

루이 15세의 여러 애첩 중 한 명이며, 가장 많은 총애를 받으며 정치적 동반자로도 자리했다. 로코코 사조를 얘기할 때는 그녀를 빼놓을 수 없는데 뛰어난 지성과 예술 감각을 지닌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로코코 문화를 만개시킨 장본인이다. 그녀는 '백과전서'를 편찬하여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뛰어난 예술적 안목으로 다양한 예술을 후원하였고, 당대 귀족 사회의 패션과 헤어 스타일의 유행을 선도하였다. 이러한 그녀의 생애와 활동에 대해 알아보자.

1. 생애

파리의 부유한 금융업자의 딸로 태어난 퐁파두르는 신분은 평민이었으나, 부르주아 계층이었던 어머니 애인 덕에 귀족 자녀 이상의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성적 또한 전 분야에 걸쳐 우수한 학생이었다. 1741년 그녀의 사촌과 결혼하며 딸 알렉상드린을 낳았다. 그녀의 소유지 근처에 루이 15세가 사냥을 위해 자주 찾으면서 1743년 루이 15세는 점차 퐁파두르 부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결국 루이 15세는 그녀에게 완전히 매료되었고, 베르사유 궁전으로 데려와 내연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녀에게 사유지를 선물한 뒤 퐁파두르 후작 부인이라는 지위를 부여하여 그녀를 귀족 신분으로 만들어주었다. 그 뒤 퐁파두르는 1745년 남편과 이혼한 뒤 정식으로 왕의 정부가 되었다. 그녀와 루이 15세의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으나, 정치적 파트너이자 궁정예술의 후원가로 활동하게 된다. 퐁파두르 부인은 43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하였으나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루이 15세의 총애는 계속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활동

그녀는 회화, 건축, 음악, 조각 등 다양한 예술 분야를 후원하였고, 특히 로코코 양식을 선호하였다. 그녀는 직접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주얼리 디자인도 했으며, 동판화도 제작하였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퐁파두르 부인이 만든 초상화나 연극을 주제로 한 동판화들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자신의 형제를 국왕의 건물 감독으로 임명하고 베르사유 궁전의 쁘띠트리아농 궁전, 퐁텐블로 성의 새 건물, 벨뷔 성 등 궁정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하였다. 그녀는 가구나 도자기, 그릇, 의상, 보석, 그림 등 많은 수집품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들은 그녀의 사후 유품 정리를 하는데만 1년이 걸릴 정도의 양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기에 그녀의 취향이 당시 귀족 사회의 유행이 되었다.

마담 퐁파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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